디아스포라의 정체성

Original Publish: http://pnhwang.com/xe/55933

어제는 몽골교회에서 설교를 했다. 그런후 알링톤(Arlington)에 있는 르확체릉, 믕흐 바야르의 가정에 아내와 방문하여 고통속에 있는 그 가정을 해방하기 구출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아침겸 점심겸 저녁겸 한 끼를 먹고 죽은 듯이 잤다. 그런후 일어나 보니 새벽 1시 30분이다. 지금은 새벽 3시이다.
루터 김(Luther J. Kim)의 아티글을 읽고 난후 내 영혼에 기쁨과 영감이 떠 올라 칼럼을 남긴다.
.......................................

제목: 아브라함처럼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확인하라!


서론: 나는 한국에서 30년, 몽골에서 20년, 이제 몽골 이민자들을 따라 9년을 미국 와싱톤에서 이민자로 살고 있다. 이민자자가 무엇인지 모르고 이민을 생각했다. 이민자(Immigrant)가 누구인가? 특히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있어 디아스포라(Diaspora) 자신은 누구인가?를 아는 것 이중요하다.

1. 디아스포라의 신학적 연구의 선구자들!

디아스포라(이민자, 흩어진 사람들)에 대한 위대한 연구의 개척자들은 다음과 같다.
2010년 중국계 선교학자인 에녹 완(Enock Wan)이다. 그는 미국 오리겐 주 웨스턴 신학교 타문화권 선교학 교수이다. 그리고 필리핀 계 캐나다 선교사인 사드리 조이 티라(Sadri Joy Tira)이다. 그들은 디아스포라 선교학(Diaspora Missiology) 책을 저술하였는데, 그 책에 디아스포라의 개념을 "흩어짐"(Scatter)을 찾아내었고, 신구약 성경에서 "흩어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성경적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2011에는 김선훈과 마원석에 의해 "한국 디아스포라와 기독교 선교"를 편집했는데, 최선호는 "디아스포라에 대한 정체성 위기"란 주제의 글에서 디아스포라는를 "이스라엘의 구속사"로 이해했다. 특히 그는 "메시야 되도래가 디아스포라들에게 중심 사상을 이루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2016년에는 루터 김 박사(Luther Kim)가 "디아스포라 선교학 실행하기"란 책에서 디아스포라 사상을 "하나님의 언약 사상"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 디아스포라는 "순례자"들이며, 세상에서의 믿는 자들은 "순례자 의식"이 필요하다!

디아스포라는 성경적으로 볼 때, "순례자들"이다. 천국을 향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외국에서 디아스포라로 산다는 것은 순례자로 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순례자란 "나그네"란 의미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을 찾아 온 두 천사들과 하나님이 바로 천국에서 온 나그네였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사라 또한 메소포타미아 갈데아 우르(이라크)에서 온 나그네들였다.

첫째,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영적인 믿음의 조상으로 자신이 나그네란 사실을 아내의 죽음을 통해 자각하였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 사라가 세상을 떠낫을 때, 아내의 매장지를 만들기 위해 그 지방의 원주민인 헷 족속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당신들 중에 거류하는 자이니"(창 23:4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으로 부름받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낯선 가나안 땅으로 옮겨와 살아갈 때에 "나는 나그네로구나!"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자각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히브리서 11장 13-14절은 아브라함의 나그네 사상을 놀라운 사실을 흥미진진하게 설명한다. 아브라함은 그 시대 그 지방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 나라의 사람들에게 외국인이며 나그네의 정체성과 천국이라는 영적인 본 고향을 믿는 믿음의 정체성을 갖고 살았음을 증거한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로되.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들임을 나타냄이라"

둘째, 아브라함은 분명이 육신적 고향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을 더 크고 위대한 고향을 인식하였다.
그는 자신이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에 떨어진, 그 당시 문화와 세상적 경제와 정치의 발전을 이루어낸 갈대아 우르라는 자랑스런 도시(고향)보다도 비록 누추하고 미개한 덜 발전된 가나안 땅에 선교사로 가서 살고 있었지만 "위대한 하나님의 한 도성인 천국"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의 믿음으로 마음 속에는 그 곳에 갈 날을 그리며 사모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모든 믿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나그네로써의 바른 신학적 사상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을 중심으로 살 것이 아니다. 세상에 목숨을 걸고 살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분투하며 인내하며 살 곳은 바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천국 도성"이어야 한다. 세상이라는 곳에 살고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 준비한 황금길로 장식된 한 도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히브리서 11:15절을 보라!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셋째, 아브라함은 영혼의 고향에 하나님이 환영하며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통찰로 살았다.
그는 세상에 살면서 친척의 배신을 경험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쟁을 경험했다. 종에게 신분 상승의 기회를 주었더니 하갈과 이스마엘의 조롱을 경험했다. 아내들 간의 갈등과 가정의 불협화음을 경험했다.
재산을 나누어 주어 멀리 가도록 하였다. 사랑하는 외아들을 죽여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야 하는 믿음의 시험을 경험하였다. 인생사의 중간 중간에 하나님과 대화하며 하나님과 약속도 하며 언약을 받기도 하였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과 만났다. 그리고 그 시신앞에서 오랫동안 아내의 죽음을 묵상하고 자신이 누구인가를 정신세계의 막바지 골목에까지 고뇌하였다. 그런후 그는 디아스포라(흩어진 나그네)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통찰에 도달하였다. "아내는 나그네였구나!" 나 역시 그녀의 뒤를 따라 가야 하는 "나그네이구나!" 죽음의 문앞과 무덤의 문앞에서 비로소 발견한 사실이 "나는 땅에서 나그네이다"는 사실이었다.

지난 주에는 와싱톤에 한국인 중에서 가장 위대한, 가장 고위층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62세이며, 세계 무역센타의 부총재, 노벨상 위원회 부 위원장.... 5개국어를 자유 자재로 구사하고, 사우디 국왕이 만나자고 했을 때, 만남의 시간을 연장하고 당신보다 더 큰 왕이 나를 불러 와싱톤에 가야하겠다고 하며 비행기로 날아와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와 경배를 드린후 다시 날아가 그를 만났다는 이희돈 장로님이시다. 세계 최고의 자리들 가운데 5개의 지위(position)_를 가졌던 금세기 한국인 최고의 위치에 있었던 나그네였다. "그는 나그네 중의 최고의 위대한 한 나그네"였다. 영국 최고의의 대학을 졸업했고, 미국에서 공부했으며, 멕시코 선교사로 자신을 낮추어 살았던 그가 요셉처럼 복을 받아 믿음과 명예와 권세를 갖고 살았던 엄청난 삶이었다.
2002년 911사건으로 몇 분 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세계 무역센타로 들어가다가 설사를 당하여 옆 건물로 들어 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18년을 더 살았다. 히스기야 왕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분도 2020년 9월 세상을 떠나 하나님 품안에 안겼다.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죽음을 묵상하며 아브라함이 사라의 시신앞에서 묵상했던 디아스포라 "나그네"의 정체성을 인식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주 나에게 "교회 개척" 책에 들어갈 몽골 교회 개척의 일부를 써 달라고 부탁하였던 태국 선교사 공기원를 기억한다. 금년에 다시 연락했더니 얼굴도 모르는 사모님이 대답하시기를, "공 목사님은 지난해 가을 댕기병으로 천국에 가셨다"고 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목사님은 이제 막 중년에 든 51세의 젊은 선교사님셨다. 내게는 천둥과 같은 소리였다. 우리가 기억 할 것은 이 땅은 잠시 살다가는 "나그네의 땅"이란 진리이다.


급성 위암으로 와싱톤에서 이희돈 장로님이 간 곳, 댕기병으로 태국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들을 두고 먼저 가신 공기원 선교사님이 가신 곳은 바로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딲아 주시는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다. 그 곳이 바로 내 영혼의 고향이며 이희돈 장로님, 공기원 선교사님의 고향 땅인 곳이다. 그분들은 잠시동안 안개처럼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았을 뿐이며, 예수님은 그 천국 도성에서 지금 우리가 살 집을 짓고 계시고, 하나님 아버지는 그곳의 주인이시며 왕이시다. 그분은 "죄인이었던 우리를 부끄러워 하지 않으시고 두 팔을 넓게 벌려 우리를 환영하시는 분"이시다!
히브리서 11:16절에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마치는 글:

디아스포라 개념 속에 있는 순례자 의식은 "믿는 자들의 중요한 신앙고백"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들의 성경적인 정체성은 "외국인"(Allinns)란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을 발견해서 주장한 학자가 있는데 바로 호러스(Stanly Hauerwas)와 윌리몬(William J Willimon)이다. 이들은 "거주하는 외국인"(Residents Alliens)라는 책에서 "우리를 외국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언급하고 있다.

왜 우리가 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영주권자들인가?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소아시아와 중동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며 삶의 터전은 소아시아와 유럽에서 살며 남은 생애를 마쳤다. 그는 자신의 삶과 우리의 삶에 대한 발견과 통찰로써 "우리의 시민권(Citizenship)은 하늘에 있다"(빌3:20)고 선포했다. 우리는 언젠가는 하나님 나라에서 부름받아 우리의 시민권이 있는 그 나라로 가 살게 되어 있다. 우리 차례가 되면 우리들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될 것이다.
죽음은 이 땅에서의 나그네의 임무를 마치고 건너오거나 건너 갈 수 없는 큰 구렁텅이 사이를 건너 가는 일이다(눅 16:25절).

그러나 역설은 "외국인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 거주자(Residents)라는 사실이다"(루터 김 p.3)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삶과 천국에서의 삶 사이에는 항상 갈등이 존재한다. 세상에서는 슬픔과 이별의 아픔이 있지만 천국에서 환영과 위로가 있다. 세상에서는 핍박과 불안이 존재하지만 천국에서는 고향에 온 평안과 안전이 존재한다. 세상에서는 걱정과 염려가 있으나 그 곳에는 기쁨과 노래가 하모니로 흘러간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디아스포라(이주민)는 누구보다도 "순례의식이 강하게 작용하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나는 순례하는 나그네 일뿐"이라는 고백을 하나님은 듣고 싶어 하신다!